낙동정맥

한무당재~관산~만불산~효동치 (낙동정맥 제16구간)

구대장 2014. 2. 10. 11:28

[일시] 2014년 2월 8일(토)

[날씨] 새벽부터 내린 눈으로 제법 눈이 쌓여있었고, 조금씩 눈도 내렸으나 양은 많지 않았음. 정오무렵부터 내리던 눈은 멎추고 흐리다 맑다를 반복함. 오후들어서면서 영상의 기온을 보임.  

[코스] 한무당재(청석골재, 해발 200m)-관산(해발 393.5m)-만불산-4번국도(+중앙선 철도)-아화고개(해발 140m, 경부고속도로)-과수원 임도-효동치(해발 180m)

[산행 거리] 도상거리 13.5km (실제 거리 15.3km)

[산행 시간] 4시간 15분 소요 (점심시간 5분 포함) 

 

 

한무당재 (청석재)

 

한무당재는 옛날 무당 할미를 모신 서낭당이 있었다고 해서 한무당재, 일명 할미당재, 혹은 근처 골짜기에 靑石이 많고 산적이 출몰했다 해서 청석골재라고 불려지기도 한다. 한무당재로 909번 지방도가 지나고 있다.


관산(冠山)

 

관산은 정상부가 사모관을 쓴 모습같이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만불산(萬佛山)

 

히말라야산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룬 영산’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불교경전에서는 흔히 히말라야산을 ‘설산(雪山)’이라고 지칭한다. 이처럼 백두산은 설산(히말라야산)과 상통하는 신령한 산이라고 할 수 있으며, 백두산의 정기를 이어받은 만불산 또한 부처님이 6년 고행 끝에 깨달음을 이룬 히말라야(설산)의 정기가 서린 ‘영산(靈山)’이라 할 수 있다. 만불산(萬佛山)은 역사적으로도 유서 깊은 산이다. 《삼국유사》탑상(塔像) 편 ‘사불산 굴불산 만불산’ 조에 보면 ‘만불산’에 대한 기사가 나온다. 신라 경덕왕은 당 대종이 불교를 숭상한다는 말을 듣고 크게는 사방 한 치, 작게는 8~9푼에 불과한 만 분의 부처님을 모신 1장(丈, 약 3m) 높이의 가산(假山)을 만들어 보냈다. 이 만불산은 바위와 동굴로 각 구역을 나누고, 각 구역 안에 사람들이 노래하고 춤추고 노는 모습과 온갖 나라의 산천을 조성했다고 한다. 또 누각과 전각, 종각 등을 조성해 놓았는데, 바람이 불면 종이 울리고 1,000여 명의 스님상이 모두 엎드려 절하도록 장치했다고 한다. 만불산을 전해 받은 당 대종은 그 정교함에 놀라 “신라의 교묘한 기술은 하늘이 만든 것이지 사람의 기술이 아니다”며 감탄했다고 한다. 대종은 만불산을 내도량(內道場)에서 봉안한 뒤 스님들에게 예배토록 했다고 한다. 이처럼 만불산은 신라 불교문화의 우수성과 깊은 신앙심을 상징하는 산이었다. 경덕왕이 당 대종에게 보낸 ‘만불산’에 1만 부처님이 모셔진 것과 같이 영천 만불산에는 20만 분 이상의 부처님이 봉안돼 불자들의 찬탄과 예배, 신행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리(舍利)

 

인도 고대의 말인 '사리라'의 술어적 명사로서 사리(舍利)는 한자로 음역된 말이다. 이를 정확하게 표현하면 신골(身骨), 유골(遺骨), 영골(靈骨)이라 번역할 수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 하셨을 때 그의 제자 아난 등이 석가 세존의 육신을 화장(다비)하니 타고 남은 뼈가 오색구슬 같았고, 그 빛이 옥색 같이 맑고 깨끗했으며 또 견고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을 '사리'라 하고 탑을 쌓고 그 속에 보관하였던 것이다. 만불산은 1993년 페라헤라 행사시 스리랑카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이운 받아온 부처님의 진신사리 5과가 모셔진 적멸보궁이다. 사리를 모시는 뜻은 중생구제를 위한 자비행이 목적이며 자신의 묵은 업장소멸은 물론 부처님을 가까이 모시고자 하는 이에게는 크나 큰 축복이다. 만불사의 아미타대불상은 속리산 법주사 미륵대불, 대구 동화사의 약사여래대불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대불로서 높이가 33m나 되는 "아미타불"상이다.


아화고개

 

아하고개는 4번 국도가 지나는 곳이며, 경주시 홈페이지에는 아화고개의 유래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이 지역은 수리시설이 좋지 않아 농사를 짓지 못하였으며, 하절기에 초목이 고사될 정도로 재해가 심하여 언덕에 불을 지르면 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 탓다하여 아화라 칭하였다 한다. 경주일보에 아화(阿火)는 넓은 벌판과 언덕을 끼고 있는 마을로 본래 아불(阿弗), 아울(阿鬱), 아을 이라고 불러오다가 불을 화(火)로 표기하면서 아화가 된 것으로 보인다 하였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아화의 옛 이름은 아불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고 '삼국지'권 제30 동이전 진한조에는 아화는 '우리마을'이라는 뜻이 있다고 적고 있다.


효동치

 

경북 영천시 북안면 효리와 경북 경주시 서면 서오리의 경계선에 있는 2차선(909번지방도)고개다.


 

 

 

<낙동정맥 제16구간 개념도>

 

<낙동정맥 제16구간 지도>

 

<낙동정맥 제16구간 고도표>

 

 

산행 기점인 한무당재. 도로 확포장 공사로 인해 어수선한 분위기다.

 

겨울철에도 눈이 잘 내리지 않는 지역인데, 새벽녁부터 내린 눈이 등로에 제법 쌓여있었다.

 

절개지에서 올라서면, 잠시 임도를 따라 진행하게된다.

 

 

산행 초반은 비교적 완만하게 진행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눈은 멎었으나,

영상의 날씨 덕에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눈송이가 비로 변해 방수 대비를 해야만 했다.

 

 

지난 구간의 남사봉의 모습.......

 

사모관을 쓴 모습의 관산.

 

 

관산으로 올라서는 직전의 오르막길은 상당한 급경사의 된비알길이다.

낙엽위에 눈까지 더해져 상당히 힘들게 느껴진 구간이다. 

 

관산(해발 393.5m) 도착. 정상에는 정상적은 없고 묘1기가 있다.

 

 

인증샷.

 

관산에서 바라본 오봉산에서 사룡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관산의 고도가 상대적으로 낮다보니 사룡산의 산세가 제법 웅장하게 느껴진다. 다음에 가야할 구간이기도 하다.

 

 

또. 인증샷~ㅋ

 

 

 

 

관산에서 내려서다 보면 있는 양계장, 과수원 직전에 있는 정리가 잘된 납골묘.

 

 

농장을 지나면서 되돌아본 관산의 모습.

 

 

농장을 지나면서 과수원도 나오고 임도도 반복해서 나오게 되지만, 리본을 따라 진행하면 길잃을 염려는 없다.

정면 중간에 보이는 부처님상 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만불산 도착.

농장에서 보이던 부처님상은 정맥 마루금이 아닌 만불산 뒤에 위치해 있다.

 

만불산 (해발 275m). 

 

 

 

 

 

 

만불산을 지나면서 바라본 부처님상. 

만불산을 내려서면서 부터는 더이상 눈을 볼 수 없었다.

 

4번국도.

 

좌측방향으로 내려선 다음,

 

 

도로를 따라 경주시 방향으로 내려가면,

 

중간 우측으로 도로를 넘는 굴다리를 통과하게 되고,

 

굴다리를 통과해서 다시 우측으로 도로를 따라 진행하다가,

 

이 지점에서 도로를 건너고,

 

중앙선 철로를 넘고,

 

마을길로 접어들어 농장을 지나 진행하고 이후 철탑을 보면서 진행하게 된다.

 

 

철탑을 바라보면서 과수원길을 관통하게 되고,

 

경부고속도로 철조망을 끼고 좌측으로 진행하다, 

 

우측 굴다리를 통해,

 

경부고속도로를 넘어선 다음,

 

다시 마루금쪽으로 올라서 절개지를 따라 진행하다 다시 정맥 마루금에 붙으면 된다.

 

잠시 임도를 따라 진행하게 되고,

 

이후 효동치 마을 내려서게 된다.

다음에 가야할 눈덮힌 사룡산과, 사룡산에서 이어지는 부산~주사산~오봉산 마루금 능선의 모습.

 

효동치 도착.

 

 

효동치에 있는 형제 저수지가 보인다. 산행 종료.